책소개
“삶에 고통이 없었다면, 문학을 껴안지 못했을 것이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가 한국 문학사에 남긴 또 다른 걸작
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아우르며 격변하는 시대 속 한민족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대하소설 『토지』. 한국 문학사에 다시없을 걸작을 남긴 작가 박경리의 장편소설이 다산책방에서 새롭게 출간된다. 원전을 충실하게 살린 편집과 고전에 대한 선입견을 완벽하게 깨부수어줄 디자인으로 새 시대의 새 독자를 만날 준비를 마친 이번 기획의 세 번째 작품은 박경리의 첫 창작집 『표류도』다. 작가 박경리가 평생 생과 작품으로 증명한 ‘감성과 지성이 아닌 의지를 선택하는 삶’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이 작품을 통해 선연하면서도 서슬 푸른 생의 서사를 만끽하길 바란다.
저자
박경리 (지은이)
출판사리뷰
“제 삶이 평탄했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삶이 문학보다 먼저지요.”
고전의 품격과 새 시대의 감각을 동시에 담아낸
박경리 타계 15주기 추모 특별판
1957년 단편 「계산」으로 데뷔해, 26년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 『토지』로 한국 문학사에 거대한 이정표를 남긴 거장 박경리. 타계 15주기를 맞아 다산북스에서 박경리의 작품들을 새롭게 엮어 출간한다. 한국 문학의 유산으로 꼽히는 『토지』를 비롯한 박경리의 소설과 에세이, 시집이 차례로 묶여 나올 예정인 장대한 기획으로, 작가의 문학 세계를 누락과 왜곡 없이 온전하게 담아낸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이번 기획에서는 한국 사회와 문학의 중추를 관통하는 박경리의 방대한 작품들을 한데 모아 구성했고, 새롭게 발굴한 미발표 유작도 꼼꼼한 편집 과정을 거쳐 출간될 예정이다.
오래전에 고전의 반열에 오른 박경리의 작품들은 새롭게 읽힐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번에 펴내는 특별판에서는 원문의 표현을 살리고 이전의 오류를 잡아내는 것을 넘어, 새로운 시대감각을 입혀 기존의 판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책을 선보인다. 이전에 박경리의 작품을 읽은 독자에게는 기존의 틀을 부수는 신선함을, 작품을 처음 접할 독자에게는 고전의 품위와 탁월함을 맛볼 수 있도록 고심해 구성했다. 이전의 고리타분함을 말끔하게 벗어내면서도 작품 각각의 고유의 맛을 살린 표지 디자인으로, 독서는 물론 소장용으로도 손색이 없게 했다. 한국 문학사에 영원히 남을 이름, 박경리 문학의 정수를 다산북스의 기획으로 다시 경험하길 바란다.
“당신의 정절보다 나의 배덕이
훨씬 위대하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가 남긴 또 다른 유산
박경리가 세상에 내놓은 첫 번째 창작집 『표류도』
다산북스에서 새롭게 출간된 『표류도』는 『김약국의 딸들』과 더불어 독자들에게 꾸준히 거론되는 박경리의 또 다른 걸작이다. 『표류도』는 1959년 11월 20일, 박경리가 작가 인생에서 단행본 형태로 세상에 내놓은 최초의 창작집이다. 당시 『표류도』의 초판본은 이봉상 화백이 표지화와 면지화로 참여했고, 천경자 화백이 권두화로 참여했으며, 박재삼 시인이 교정·교열 작업을 진행하는 등 도서 제작 자체에도 무척 많은 공을 들여 출간됐다.
이는 등단한 지 5년이 채 되지 않는 신인 작가의 창작집으로서는 이례적인 일로, 작가 박경리와 그의 첫 창작집 『표류도』에 대한 문단의 관심과 기대가 얼마만큼 큰 것이었는가를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1959년 제3회 내성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성에서도 당대의 호평을 받았던 『표류도』는 박경리의 대표적 연애소설 중 하나다. 박경리의 연애소설은 기존 연애 서사가 보여주는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다. 이것은 박경리의 연애소설 창작 작업이 그저 대중의 인기를 목적으로 한 작업이었다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표류도』의 주인공 현회는 인간의 통상적 윤리나 규범에는 무관심하지만 확고한 자신만의 윤리와 규범이 존재하는 주체적 인물이다. 현회는 그 시대, 보통의 전형적 여성과는 다르다. 그녀는 강인한 생명력을 갖추고, 외부의 폭력에 대응하는, 내부의 저항 논리를 확고하게 지닌 인물로 절망에 빠진 듯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강인한 듯하면서도 인간적이고, 냉철한 듯하면서도 정열적이다. 그러므로 한국전쟁 이후인 1950년대 말, 근대화 과정에 등장한 이러한 여성 인물은 독자가 우리 소설의 다양성을 확인하고 인간을 폭넓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에도
모두가 다 외롭게 떠내려가야 하는 섬, 표류도입니다.”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불륜 모티프를 넘어선
박경리만의 새로운 낭만성
주인공 현회는 수많은 인물의 지지와 갈등 속에 표류하는 삶을 살고 있다. 사사건건 불화를 겪는 어머니는 현회의 잠재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지지와 갈등을 동시에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다. 현회는 어머니와의 감정이 부모와 자식 간의 애정 때문이 아닌 연민과 동정의 감정이고, 연을 끊지 못하는 것은 사회의 감시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에서 비롯된 의무감 때문이라 생각하며 어머니의 존재를 부정한다.
또한 현회는 D신문사의 논설위원이자 저명한 집안의 자제인 상현과 연인 사이다. 상현은 다방 마담인 현회의 직업을 싫어하지만, 그녀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결혼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노동으로 가정을 부양하므로 애정 이외의 생활적인 면에서 상현의 간섭을 허용하지 않는다. 현회에게 유부남인 동시에 성장과정마저 다른 상현은 애정의 대상일 뿐 결혼의 대상이 될 수 없으므로 이들의 관계는 애정으로 연결된 지지의 대상에서 생활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대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현회는 특별한 귀책사유도 없이 자신을 억압하는 수많은 외부의 폭력에 노출돼 있다. 그 이유는 그녀가 가부장적 전통이 사라지지 않은, 근대화가 시작되는 1950년대에 사생아를 출생한 전쟁미망인으로 생계를 위해 다방의 마담으로 일하며, 젊고 아름다운, 재능 있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여염집 주부인 계인이나 순재 그리고 그녀의 동창들은 도덕이나 규범을 들먹이며 현회의 직업을 비난하고 그녀의 처지를 무시하지만, 그들은 음지에서 고리대금이나 부동산투기 등 온갖 사회적 악행을 거리낌없이 저지르고 있다.
반면 그들에게 경원시되며 손가락질받는 현회는 얼굴이 아닌, 자신의 노동력으로 홀로된 어머니는 물론 배다른 동생, 유복자인 딸, 그리고 종업원인 광희와 먼 친척인 상주댁, 그의 남편까지 챙기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킨다. 그녀는 집안의 몰락, 사랑하는 사람과 자식의 죽음, 그리고 살인 등 치명적이고,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지니고 있지만 절망하거나 물러서지도, 비굴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기를 변혁하고 현실에 적응해가며 생명을 지탱해”갈 것을 다짐하는데, 이것이 ‘외부의 폭력에 대응하는 확고한 그녀의 저항 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