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삶에 고통이 없었다면, 문학을 껴안지 못했을 것이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가 한국 문학사에 남긴 또 다른 걸작
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아우르며 격변하는 시대 속 한민족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대하소설 『토지』. 한국 문학사에 다시없을 걸작을 남긴 작가 박경리의 장편소설이 다산책방에서 새롭게 출간된다. 원전을 충실하게 살린 편집과 고전에 대한 선입견을 완벽하게 깨부수어줄 디자인으로 새 시대의 새 독자를 만날 준비를 마친 이번 기획의 여덟 번째 작품은 박경리의 장편소설 『노을 진 들녘』이다. 『김약국의 딸들』과 함께 박경리의 문학적 경향을 파악할 수 있는 대표작으로, 1960년대 청년들의 개인적 고통과 방황뿐 아니라 시대적 아픔과 혼돈을 두루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저자
박경리 (지은이)
출판사리뷰
“제 삶이 평탄했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삶이 문학보다 먼저지요.”
고전의 품격과 새 시대의 감각을 동시에 담아낸
박경리 타계 15주기 추모 특별판
1957년 단편 「계산」으로 데뷔해, 26년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 『토지』로 한국 문학사에 거대한 이정표를 남긴 거장 박경리. 타계 15주기를 맞아 다산북스에서 박경리의 작품들을 새롭게 엮어 출간한다. 한국 문학의 유산으로 꼽히는 『토지』를 비롯한 박경리의 소설과 에세이, 시집이 차례로 묶여 나올 예정인 장대한 기획으로, 작가의 문학 세계를 누락과 왜곡 없이 온전하게 담아낸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이번 기획에서는 한국 사회와 문학의 중추를 관통하는 박경리의 방대한 작품들을 한데 모아 구성했고, 새롭게 발굴한 미발표 유작도 꼼꼼한 편집 과정을 거쳐 출간될 예정이다.
오래전에 고전의 반열에 오른 박경리의 작품들은 새롭게 읽힐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번에 펴내는 특별판에서는 원문의 표현을 살리고 이전의 오류를 잡아내는 것을 넘어, 새로운 시대감각을 입혀 기존의 판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책을 선보인다. 이전에 박경리의 작품을 읽은 독자에게는 기존의 틀을 부수는 신선함을, 작품을 처음 접할 독자에게는 고전의 품위와 탁월함을 맛볼 수 있도록 고심해 구성했다. 이전의 고리타분함을 말끔하게 벗어내면서도 작품 각각의 고유의 맛을 살린 표지 디자인으로, 독서는 물론 소장용으로도 손색이 없게 했다. 한국 문학사에 영원히 남을 이름, 박경리 문학의 정수를 다산북스의 기획으로 다시 경험하길 바란다.
“일맥상통하는 인간의 순수한 가슴과
가슴에 호소해 보겠어요.”
대중과 문단의 주목을 모두 받은 박경리의 대표작
거침없는 전개와 대담한 주제의식을 담다
『노을 진 들녘』은 『김약국의 딸들』과 더불어 1960년대 박경리의 작품세계와 문학적 경향을 알 수 있는 대표작으로 거론된다. 『노을 진 들녘』은 1961년 10월 23일부터 이듬해 7월 1일까지 총 250회에 걸쳐 《경향신문》에 연재된 장편소설로, 연재 후 곧장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영화화되기도 하며 대중적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특히, 대학생들의 연애를 중심으로 뒤틀린 성애의식, 유산 상속을 둘러싼 음모 등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주제를 대담하고 속도감 있게 전개해 대중과 문단, 언론의 주목을 모두 받았다.
이 시기 박경리는 꾸준히 장편 연재소설을 집필했는데, 그중 『노을 진 들녘』은 오랫동안 구상하고 연재 전 이미 24회 분량의 집필을 완료할 정도로 작가에게 중요한 소설이다. 연재를 앞두고 박경리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포부를 밝힌다. “인간이라면 인간의 가슴 속에서 느끼는 일은 식모나 대학교수나 다를 바 없을 거예요. 즉 일맥상통하는 인간의 순수한 가슴과 가슴에 호소해 보겠어요.” 또 박경리는 “쉽게 쓰겠어요. 어렵지 않은 말로 알기 쉽게 쓰면서 예술화한다는 게 앞으로 문학이 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생각해요”라고 말하며, 독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써 독자의 폭을 넓히고자 이 작품을 기획했음을 밝혔다.
그런 까닭으로 『노을 진 들녘』에서도 박경리 작품의 주요 모티프들인 불륜, 절손, 근친상간, 억지 결혼 등은 반복적으로 중첩되어 등장한다. 이야기는 넘쳐 오르는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영재와 성삼의 대립 구도로 진행되고, 그 사이에는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송 노인, 새로운 개인 주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프레걸’ 일혜, 세상과 단절되어 대자연 속에서 순수함을 간직한 주실 등 강한 개성을 가진 작중인물들이 등장해 작품의 주제를 형상화하는 데 효과적으로 기능한다. 동시에 박경리는 4·19혁명을 이야기의 배경으로 함께 배치함으로써 이 시대를 살아낸 그들의 고통과 방황이 연애의 차원을 넘어서 시대의 아픔과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랑한다는 게
왜 이렇게 거북해야 한단 말입니까?”
운명적 불행의 통속성을 넘어
박경리가 그려낸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고독
소설은 송 노인의 과수원이 있는 송화리에서 시작된다. 송 노인은 일제강점기에 아들을 잃고 열차사고로 딸과 며느리를 잃는다. 비극을 겪은 송 노인은 현대문명과 변화에 대한 반발로 주실을 세상과 단절시킨다. 주실은 천진난만함과 야생의 자유분방함을 지닌 채 자라나지만, 사촌오빠인 영재와 송화리 이웃 청년이었던 성삼에게 겁탈당하고 만다.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 만 영재는 도망치다시피 송화리를 벗어나 연을 끊으려 한다. 성삼은 근친상간이라는 비밀을 미끼로 삼아 송 노인을 협박해 주실과 결혼하고 송화리 과수원마저 차지하려고 한다.
이 무거운 갈등 구조 사이에서 영재는 계속해서 고뇌하고 죄의식을 느끼며 내적 갈등을 겪는다. 그런 영재의 곁에는 허영심 많은 미술가 일혜가 있다. 일혜는 1960년대 당시 자주 거론되던 ‘아프레걸’의 전형으로 보이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자신의 사랑과 감정에 진솔하고 정열적인 주체적 개인으로 그려진다. 반대로 영재는 일혜와 육체적 관계를 지속하며 욕망만을 좇을 뿐, 자신의 감정은 똑바로 바라보지 않고 회피하려 든다. 그런 영재의 앞에 등장한 다른 여성인물이 바로 수명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꼿꼿하게 살아가려는 우아한 수명을 만나고서야 영재는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느끼고 그제야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직시하게 된다.
박경리는 다소 통속적이라 할 수 있는 운명적 비극을 이야기하는 한편, 1960년 4월의 역사적 사건을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시킨다. 소설에서는 혁명이 일어나며 영재를 포함해 상호와 동섭 모두가 시위대의 행렬에 동참하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소설의 분위기는 한층 더 쓸쓸하고 무거워진다. 계속된 비극을 맞이하던 영재는 결국 주실을 구하고 자신의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성삼을 찾아고 이들의 갈등은 몰락으로 끝이 난다.
이처럼 많은 것이 변화하고 혼란스럽던 시대상을 통해, 박경리는 다양한 작중인물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고독을 비단 연애감정에 한정하지 않고 시대의 아픔과도 연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