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순종적이며, 헌신적이며, 섹시한 여자, 노란 꽃.
서양이 만들어낸 비밀스럽고도 은밀한 오리엔탈리즘
옐로우 피버(Yellow Fever)라는 말은 원래 황열병을 뜻하는 말이지만, 서양인들 사이에서 아프리카 풍토병을 얘기하는 것도 아닌데도 이 말이 나오면 십중팔구 동양 여자를 좋아하는 취향을 뜻한다. ‘옐로우 피버’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에서 볼 수 있듯이 서양 문화는 동양 여자를 성적 판타지의 대상으로 간주해왔다. 아시아 여성에 대한 이미지는 몇 가지로 고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한결같은 스테레오타입(stereotype), 즉 이색적이며, 순종적이며, 섹시한 여자라는 ‘정형화된 이미지’를 갖는다.
도대체 이러한 고정관념과 스테레오타입의 기원은 뭘까? 이 책은 서구사회가 가진 오리엔탈리즘의 기원과 그들의 눈에 비쳐진 동양 여성의 이미지를 찾아 나선 한 권의 문화사다. 15세기 ≪동방견문록≫에서 출발해 오늘날 미국의 드라마 《로스트》까지, 기행문, 소설, 전시, 오페라, 뮤지컬, 영화, 광고 등 서양 문화 속에서 최초였거나 전환점을 만든 동양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흥미롭게 소개한다.
목차
프롤로그 ㆍ‘옐로우 피버’, 서양을 매혹한 그녀들
1 ㆍ 유교적 가부장제의 희생양, 아시아 여성
- 마르코 폴로부터 드라마 〈로스트〉까지
아시아 여성, 서양을 유혹하다_ 미국 TV 시리즈 〈로스트〉
중세 유럽의 관음, 그들이 본 동양 여성_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할리우드의 중국 여성_ 〈대지〉와 《드래건 시드》
20세기, 편견을 이어받다_ 〈조이 럭 클럽〉
2 ㆍ 아시아 열풍을 이끈 게이샤 걸
- 〈미카도〉부터 스쿨 걸 판타지까지
동양 여성을 향한 성적 판타지
〈미카도〉, 19세기 오리엔탈 뮤지컬에 불을 지피다
3 ㆍ 나비부인의 탄생
- 《국화부인》에서 〈미스 사이공〉까지
서양의 욕망을 드러내다_ 〈나비부인〉
프랑스에 불어닥친 일본 열풍, 피에르 로티
동서양의 로맨스를 노래하다_ 〈라크메〉
〈나비부인〉의 오리진_ 《국화부인》
〈나비부인〉과 푸치니의 운명적 만남
할리우드, 게이샤를 예찬하다
4 ㆍ 위험한 여자, 드래건 레이디
- 안나 메이 웡부터 루시 리우까지
할리우드가 그려낸 20세기 아시아 여인들
박물관에 전시된 ‘기이한’ 중국소녀들
5 ㆍ 인종적·공간적 하이브리드, 홍콩
- 〈모정〉, 〈수지웡의 세계〉부터 중국 반환까지
1997년 불안한 홍콩, 〈차이니스 박스〉
계몽된 세계, 홍콩
6 . 백인 영웅의 숨은 조력자
- 클레오파트라부터 〈엘리멘트리〉까지
21세기 미국판 셜록 홈즈_ 〈엘리멘트리〉
셰익스피어, 그리고 클레오파트라
1924년판 아라비안나이트_ 〈바그다드의 도적〉
7 . 모델 마이너리티, 앵커우먼 스테레오타입
- 코니 정과 수많은 아시아 앵커우먼들
미국의 아시아 여성_ 코니 정 신드롬
모범적인 소수민 이미지_ 아시아계 앵커우먼
8 . 포스트모던 스펙터클
- 페티시, 모방, 향수의 대상이 된 아시아 여성
아메리칸 아시안의 문화적 격변
포스트 모던, 그리고 스펙터클과 페티시
에필로그 ㆍ 박제된 이미지, 현실이 되다
참고 영화 목록
저자
우미성
출판사리뷰
순종적이며, 헌신적이며, 섹시한 여자, 노란 꽃.
서양이 만들어낸 비밀스럽고도 은밀한 오리엔탈리즘
옐로우 피버(Yellow Fever)라는 말은 원래 황열병을 뜻하는 말이지만, 서양인들 사이에서 아프리카 풍토병을 얘기하는 것도 아닌데도 이 말이 나오면 십중팔구 동양 여자를 좋아하는 취향을 뜻한다. ‘옐로우 피버’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에서 볼 수 있듯이 서양 문화는 동양 여자를 성적 판타지의 대상으로 간주해왔다. 아시아 여성에 대한 이미지는 몇 가지로 고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한결같은 스테레오타입(stereotype), 즉 이색적이며, 순종적이며, 섹시한 여자라는 ‘정형화된 이미지’를 갖는다.
도대체 이러한 고정관념과 스테레오타입의 기원은 뭘까? 이 책은 서구사회가 가진 오리엔탈리즘의 기원과 그들의 눈에 비쳐진 동양 여성의 이미지를 찾아 나선 한 권의 문화사다. 15세기 ≪동방견문록≫에서 출발해 오늘날 미국의 드라마 《로스트》까지, 기행문, 소설, 전시, 오페라, 뮤지컬, 영화, 광고 등 서양 문화 속에서 최초였거나 전환점을 만든 동양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흥미롭게 소개한다.
가부장적이며 폭력적인 ‘동양 남자’,
‘서양’이 구원해야 할 ‘동양 여자’
15세기 출간된 ≪동방견문록≫은 서양 역사에서 중세의 끝과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는 서양 최초의 동방 기행문이다. 폴로의 실크로드 여정은 13세기 유럽인으로서는 파격적일 만큼 아시아 대륙 깊숙이 다녀온 것이었다. 그는 무려 20년 이상을 아시아에 머물며 중국, 몽골 인도의 풍습과 전통을 목격했으며, 이후 책으로 출간된 이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이 한 권의 기행문이 오늘날까지 서양인들의 동양 여성에 대한 ‘관음의 전통’에 시작을 알리는 책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동방견문록≫에 등장하는 여성은 한결같이 이국적이며, 순종적이며, 문명화된(서양) 남성이라면 누구라도 짜릿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을 안겨준다. “이 여성들은 누구에게나 적절한 대화로 친근함을 표현하거나 부드러운 접촉에 능해서 이들과 한 번 즐긴 경험이 있는 외국인들은 그들의 달콤한 매력에 반해 곁을 떠나지 못하고 쉽게 잊지를 못한다.” 폴로의 묘사를 보자면 ‘독특하고,’ ‘특이하고,’ ‘기이하며,’ ‘남다른’ 욕망을 충분히 다른 문화권에서 채우기에 충분하다.
연세대 영문과 교수이자 이 책 ≪노란 꽃≫의 저자인 우미성 교수는 1990년대 미국 위스콘신-매디슨 대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아시아 관련한 뮤지컬과 영화, 소설, 드라마 등의 텍스트들을 접하며 오늘에 이르러서도 서양인들의 성적 판타지와 연관된 일련의 계보에 따르고 있음을 밝혀낸다. 이국적이고 순진무구한 동양 여성에게 일시적으로 매료되어 즐기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그 여성은 서양의 일부가 될 수 없는 미숙한 존재임을 깨닫고 죽음을 선택하는 19세기 《나비부인》이나 가혹한 전쟁과 가부장적인 남성의 폭력에 시달리지만 끝까지 헌신하다 죽음을 맞는 노벨문학상 수상작 ≪대지≫는 엄밀히 같은 내러티브 구조라는 것. 이른바 19세기 게이샤 열풍도, 드래건 레이디 열풍을 포함해 21세기 한류 열풍까지도 서양 문화의 시선은 여전히 15세기 ≪동방견문록≫에 멈춰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알고 있는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인가?
우미성 교수는 이러한 서양의 편견 가득한 문화적 시선에 우리 스스로도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1993년 아카데미 최우수외국영화상과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패왕별의》의 첸 카이거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서양의 관객과 심사위원들에게 어떻게 어필할 것인지를 늘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든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마침 2012년 베니스영화제는 황금사자상 수상작으로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를 호명했다. 7년전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수상 실패의 아쉬움을 털어내는 한국 영화사의 쾌거였다. 하지만 쾌거와는 별개로 그의 작품은 한국 여성의 성적 정체성을 부각시킨 내러티브나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낚시터에서 미끼뿐 아니라 몸까지 파는 매춘부 처녀를 다룬 《섬》, 멀쩡한 여대생이 납치되어 매춘부로 전락하는 과정과 집착과도 같은 남성의 욕망을 보여주는 《나쁜 남자》 등은 여성의 몸에 대한 페티시와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한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극이 전개된다. 남자 주인공의 성적 환상과 폭력의 대상으로서의 한국 여성이 반복적으로 재현되지만, 서양의 영화제는 이러한 반복적 재현이나 내러티브에 대해 끊임없이 환호해왔다. 세계적인 영화제 수상의 가치를 평가 절하할 필요는 없지만 첸 카이거 감독의 고백이 던지는 의미를 한번쯤 되새겨볼 대목이다.
‘서양’이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을 읽는 한 권의 문화사
미국의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는 그의 희곡 ≪동물원 이야기The Zoo Story≫에서 한 곳에 못 박힌 채 자신만의 세계를 고수하며 타인의 삶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 인간을 ‘식물’에 비유한다. 서양이 바라본 동양 여자는 지금껏 ‘노란 꽃’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스스로 낡은 틀을 깨야 할 때가 됐다. 한국 가수가 유튜브를 통해 단 몇 주 사이에 월드스타가 되고 한국의 영화배우가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고 한국 독의 영화가 미국과 서울에서 동시 개봉되는 것이 요즘의 초국가적 문화현상이다. 우리가 새롭다고 믿었던 콘텐츠가 알고 보면 이미 여러 번 변형 반복되어온 스토리거나 이미지여서 해외 영화제나 외국무대에서 호응을 얻지 못한 사례도 많다. 서양 문화가 수백 년간 아시아를 어떻게 재현해왔는지를 아는 것은 한류를 만들어내는 생산자나 소비자인 일반 관객 모두에게 유용한 정보가 될 것이다. 또한 ≪노란 꽃≫은 우리 사회에 편입해 들어오기 시작한 다른 ‘아시아인’들에 대한 우리만의 또 다른 스테레오타입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지 점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