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여유와 기쁨이 사라진 오늘을 사는 독자들에게 건네는
피천득의 다정하고도 다감한 선물
피천득의 번역 시 선집 『착하게 살아온 나날』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본래 『내가 사랑하는 시』(1997)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으나 이번 개정판에서 제목과 목록 구성을 바꾸고 미발표 번역 시도 수록했다. ‘착하게 살아온 나날’은 본문에도 수록된 바이런의 시 「그녀가 걷는 아름다움은」의 한 구절로, 피천득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시의 마음과 시인의 자세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남을 누르고 이겨야 할 수 있는 세계에서 시는 사실 잘 읽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오히려 시를 가까이 두고 읽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착하게 살아온 나날』은 피천득이 여유와 기쁨이 사라진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건네는 다정하고도 다감한 선물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수필가로 알려져 있으나 피천득은 시로 문학을 시작했고, 그 기저에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애송했던 동서양 유수의 시들이 있다. 피천득의 작품 전반에 드리워진 “순수한 동심”과 “맑고 고매한 서정성”의 발현은 그곳에서부터다. 1부 ‘천사도 아니지만’에는 피천득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가운데서도 가장 애송하는 시편을 원문에 가깝게 번역한 것과 새롭게 윤문한 것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한국 정서에 맞게 14행 정형시를 3·4조와 4·4조로 번역한 ‘셰익스피어 소네트 다시 쓰기’는 피천득의 번역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
2부 ‘사랑이 기울 때’에는 피천득에게 시인의 꿈을 심어 준 바이런, 워즈워스, 예이츠, 디킨슨 등 서양 시인들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번에 추가된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시 세 편과 마찬가지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세계 명시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3부 ‘돌아가리라’에는 도연명, 두보, 보쿠스이, 타고르 등 동양 시인들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사사로운 감정을 제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행간들을 천천히 좇다 보면 마음에 와닿는 한 편의 여유와 한 줌의 위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1부 천사도 아니지만
▶윌리엄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소네트』 29번
내 처지 부끄러워
『셰익스피어 소네트』 66번
그대를 두고 가지 않는다면
『셰익스피어 소네트』 73번
늦은 계절
『셰익스피어 소네트』 104번
미(美)는 이미 졌느니
『셰익스피어 소네트』 116번
사랑만은 견디느니
『셰익스피어 소네트』 130번
천사도 아니지만
2부 사랑이 기울 때
▶윌리엄 블레이크
『천진의 노래』―서시(序詩)
『천진의 노래』―유모의 노래
『천진의 노래』―양(洋)
▶윌리엄 워즈워스
외로운 추수꾼
그 애는 인적 없는 곳에 살았다
▶조지 고든 바이런
시용 성(成)에 부친 소네트
그녀가 걷는 아름다움은
▶알프레드 테니슨
부서져라, 부서져라, 부서져라
『인 메모리엄』 중에서
모래톱을 건너며
▶로버트 브라우닝
최상의 아름다움
피파의 노래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포루트갈 말에서 번역한 소네트』 23번
▶매슈 아널드
도버 해변
▶루퍼트 브룩
병사(兵士)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이니스프리의 섬
하늘의 고운 자락
낙엽
수양버들 정원에서
그는 커류를 나무라다
굳은 맹세
▶랠프 월도 에머슨
콩고드 찬가(讚歌)
▶에밀리 디킨슨
나는 미(美)를 위하여 죽었다
나 황야를 본 적이 없다
▶크리스티나 로세티
이름 없는 귀부녀
내가 죽거든 임이여
올라가는 길
▶사라 티즈데일
수련(睡連)
잊으시구려
별
3부 돌아가리라
▶도연명
돌아가리라[歸去來辭]
전원(田園)으로 돌아와서
음주(飮酒)―제5수
▶두보
손님[客]
절구(絶句)
▶요사노 아키코
노래
▶이시카와 다쿠보쿠
노래
▶와카야마 보쿠스이
백조(白鳥)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기탄잘리』 36번
『기탄잘리』 60번
작품에 대하여: 날던 새들 떼 지어 제집으로 돌아온다(김우창)
저자
조지 고든 바이런 (지은이), 피천득 (옮긴이)
출판사리뷰
1973년 시작한 역사적인 [세계시인선]
반세기 가장 긴 생명력을 이어온 시리즈
1 호라티우스, 『카르페 디엠』
▶ 로마 라틴어 서정시 국내 최초 완역!
2 호라티우스, 『소박함의 지혜』
▶ 서양 문학의 거장 시인들이 숭배하는 시성 국내 초역!
3 『욥의 노래』
▶ 히브리 시문학의 정수! 시인 블레이크 그림과 함께 감상하는 비극의 세계
4 프랑수아 비용, 『유언의 노래』
▶ 중세 암흑기 대표 작가, 그러나 지극히 현대적인 시인 비용 국내 최초 소개!
5 김수영, 『꽃잎』
▶ 참여시인을 넘어 한국 모더니스트로서의 문학적 가치 재발견!
6 에드거 앨런 포, 『애너벨 리』
▶ 김경주 시인의 새로운 번역! 도레의 그림과 함께 감상하는 고딕 낭만의 세계
7 보들레르, 『악의 꽃』
▶ 우리 문학계 스타 어른 황현산 문학평론가의 참신한 번역!
8 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철』
▶ 한국 불문학의 전설 고 김현 선생의 살아 있는 번역!
9 말라르메, 『목신의 오후』
▶ 한국 불문학의 거장 김화영 교수의 믿을 수 있는 번역!
10 윤동주, 『별 헤는 밤』
▶ 한국 문학의 가장 순수한 영혼의 고뇌! 윤동주 자필 원고 수록
11 에밀리 디킨슨,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고독과 슬픔의 시인, 간결한 문체와 모던한 감수성의 결합!
12 부코스키,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현대 시인 부코스키 시집 국내 초역!
13 브레히트, 『검은 토요일에 부르는 노래』
▶ 시인이자 니체주의자로서의 브레히트 정수가 담긴 『가정기도서』 국내 초역 다수
14 헤밍웨이, 『거물들의 춤』
▶ 특유의 생략적 글쓰기를 잘 보여 주는 헤밍웨이 시집 국내 초역!
15 백석, 『사슴』
▶ 백석 평전을 쓴 안도현 시인이 백석의 정수만을 뽑아 전하는 선집
16 부코스키,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
▶ 미국 서점에서 가장 많이 도둑맞는 책의 작가 1위!
17 T. S. 엘리엇, 『황무지』
▶ 신비평을 주도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영어로 쓰인 최초의 현대시”!
18 이브 본푸아, 『움직이는 말, 머무르는 몸』
▶ 보들레르의 정통성을 계승하며 오늘날 프랑스 시단을 대표하는 본푸아의 첫 시집
19 기욤 아폴리네르,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
▶ 아폴리네르 연구에 매진한 황현산 문학평론가가 가려 뽑은 아폴리네르 시선집
20 정지용, 『향수』
▶ 한국 시단의 이미지스트, 모더니스트 계열의 선구자 정지용 시의 정수!
21 윌리엄 워즈워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 영국의 낭만주의, 자연주의 시인의 목가적 시편들을 가려 뽑은 선집
22 빌헬름 뮐러, 『겨울 나그네』
▶ 독일의 대중적 낭만주의 시인 빌헬름 뮐러의 대표 연작시 국내 최초 완역
23 D. H. 로렌스, 『나의 사랑은 오늘 밤 소녀 같다』
▶ 휘트먼적인 자유시를 통해 휘두르는 강렬한 감정과 신비로운 교감의 세계
26 로베르 데스노스, 조재룡 옮김, 『알 수 없는 여인에게』
▶ 앙드레 브르통이 인정한 초현실주의 기수 데스노스 선집 국내 초역
27 자크 프레베르, 김화영 옮김, 『절망이 벤치에 앉아 있다』
▶ 샹송 「고엽」의 작가 프레베르의 진수를 담은 시선집
30 윌리엄 셰익스피어, 피천득 옮김, 『셰익스피어 소네트』
▶ 지극히 절제된 14행시에서 우아하고 경쾌하게 뛰노는 언어와 감정의 축제
31 피천득 옮김·엮음, 『착하게 살아온 나날』
▶ 대한민국 1세대 대표 영문학자이자 시적 산문의 대가 피천득이 번역하고 엮은 세계 시 선집
32 칼릴 지브란, 황유원 옮김, 『예언자』
▶ 95년간 4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1억 부 이상 팔린 ‘현대의 성서’
한국 시문학의 바탕을 마련한 세계시인선
1970-1980년대에는 시인들뿐만 아니라 한국 독자들도 모더니즘의 세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때로는 부러움으로, 때로는 경쟁의 대상으로, 때로는 경이에 차서, 우리 독자는 낯선 번역어에도 불구하고 새로움과 언어 실험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러한 시문학 르네상스에 박차를 가한 것이 바로 세계시인선이다.
민음사는 1966년 창립 이후 한국문학의 힘과 세련된 인문학, 그리고 고전 소설의 깊이를 선보이며 종합출판사로 성장했다. 특히 민음사가 한국 문단에 기여하며 문학 출판사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바로 ‘세계시인선’과 ‘오늘의시인총서’였다. 1973년 12월 이백과 두보의 작품을 실은 『당시선』(고은),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김현),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검은 고양이』(김주연), 로버트 프로스트의 『불과 얼음』(정현종) 네 권으로 시작한 세계시인선은 박맹호 회장이 고 김현 선생에게 건넨 제안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보는 외국 시인의 시집이라는 게 대부분 일본판을 중역한 것들이라서 제대로 번역이 된 건지 신뢰가 안 가네. 현이(김현)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프랑스나 독일에 다녀온 이들 아닌가. 원본을 함께 실어 놓고 한글 번역을 옆에 나란히 배치하면 신뢰가 높아지지 않을까. 제대로 번역한 시집을 내 볼 생각이 없는가?”
대부분 번역이 일본어 중역이던 시절, 원문과 함께 제대로 된 원전 번역을 시작함으로써 세계시인선은 우리나라 번역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기여하게 되었다. 당시 독자와 언론에서는 이런 찬사가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요, 또 책임 있는 출판사의 책임 있는 일이라 이제는 안심하고 세계시인선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세계시인선은 출판 역사상 가장 오랜 수명을 이어 온 문학 총서의 하나이자 시문학계와 민음사를 대표하는 시리즈가 되었다.
지금의 한국 시인들에게 영혼의 양식을 제공한 세계시인선
“탄광촌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할 때 세계시인선을 읽으면서 상상력을 키웠다.” ―최승호 시인
“세계시인선을 읽으며 어른이 됐고, 시인이 됐다.” ―허연 시인
“나에게 세계시인선은 시가 지닌 고유한 넋을 폭넓고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 ―김경주 시인
세계시인선은 문청들이 “상상력의 벽에 막힐 때마다 세계적 수준의 현대성”을 맛볼 수 있게 해 준 영혼의 양식이었다. 특히 지금 한국의 중견 시인들에게 세계시인선 탐독은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밑바탕이었다. 문화는 외부의 접촉을 독창적으로 수용할 때 더욱 발전한다. 그렇게 우리 독자들은 우리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시성들과 조우했고, 그 속에서 건강하고 독창적인 우리 시인들이 자라났다.
하지만 한국 독서 시장이 그렇게 시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시문학 전통이 깊은 한국인의 DNA에 잠재된 자신감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토대에서 자라난 시문학은 또 한 번의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국내 출판 역사에서 시집이 몇 권씩 한꺼번에 종합베스트셀러 랭킹에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세상을 향해 보다 더 인상적인 메시지를 던져야만 하는 현대인에게 생략과 압축의 미로 강렬한 이미지를 발산하면서도 감동과 깊이까지 숨어 있는 시는 점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 씨앗을 심어 왔던 세계시인선이 지금까지의 독자 호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리뉴얼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