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나보코프 특유의 미학과 소설 기법이 응축된 장편소설 『프닌』이 미국에서 출간된 지 65년여 만에 드디어 문학과지성사에서 초역 출간되었다. 나보코프가 코넬 대학 재직 중 『롤리타』를 완성하기 위해 무급 안식년을 보내던 1953년 11월, 『뉴요커』에 「프닌」이라는 제목의 소품이 실렸다. 그 뒤로 세 편의 글이 더 연재되었고 이 글들을 모은 데서 출발한 『프닌』은 『롤리타』와 비슷한 시기에 마무리되었다. 『롤리타』는 미국에서 사실상 출판이 금지되어 1955년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되었고 『프닌』도 연이어 퇴짜를 맞았다. 『프닌』은 1957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나보코프가 미국에 정착한 이래 세번째로 출간한 영어 소설이 되었다. 출간 2주 만에 3쇄를 찍는 성과를 냈지만, 1958년에 결국 미국에서 출간된 『롤리타』가 폭발적 성공을 거두면서 『프닌』은 거의 잊히다시피 했다.
『프닌』은 소품이라는 이유로 처음에는 호평을 받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보코프를 단순한 망명 작가가 아닌 독창적인 작가로 각인시키는 작품이 되었다. 나보코프는 이 작품을 “『롤리타』의 참을 수 없는 마력을 벗어나 잠시 환한 곳으로 탈출하는” 글이라고 언급했고, 자신의 모든 소설 캐릭터 가운데 프닌을 인간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두번째가 롤리타).
이 작품은 주인공 프닌(러시아 망명 지식인)과 화자(나보코프와 직업과 생일이 같은 나보코프의 소설적 분신), 작가 나보코프의 세 차원으로 서술된다. 이 셋은 실제 나보코프의 이력과 경험을 부분적으로 반영한다. 가령 프닌의 어린 시절 연인이 나치 수용소에서 죽은 점은 시인이자 동성애자이며 반히틀러주의자였던 나보코프의 동생 세르게이가 비슷한 죽음을 맞은 사실과 겹친다. 작품의 화자가 곤충학자이자 러시아 문학가인 점도 실제 나보코프와 유사하다.
프닌 - 화자 - 작가는 영어 구사의 수준이나 미국 적응 정도, 학내 평가 면에서 차이가 있다. 작품 곳곳에서 이 세 가지 서술 차원이 중첩되고 균열되고 분리되면서 독자는 작품이 주는 리듬과 혼란, 오해를 오가다가 마침내 감동과 이해를 얻게 된다. 이 소설에서 프닌은 버려진 개와 함께 불확실한 목적지, “무슨 기적이라도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곳”으로 향한다. 그러나 화자와 다른 등장인물들이 생각하는 종류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프닌의 망명과 상실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옮긴이의 말ㆍ『프닌』의 반전: 기법적 절묘함과 ‘윤리적 아름다움’
작가 연보
저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은이), 김정아 (옮긴이)
출판사리뷰
나보코프 최초의 베스트셀러 『프닌』 국내 초역 출간
나보코프 특유의 미학과 소설 기법이 응축된 장편소설 『프닌』이 미국에서 출간된 지 65년여 만에 드디어 문학과지성사에서 초역 출간되었다. 나보코프가 코넬 대학 재직 중 『롤리타』를 완성하기 위해 무급 안식년을 보내던 1953년 11월, 『뉴요커』에 「프닌」이라는 제목의 소품이 실렸다. 그 뒤로 세 편의 글이 더 연재되었고 이 글들을 모은 데서 출발한 『프닌』은 『롤리타』와 비슷한 시기에 마무리되었다. 『롤리타』는 미국에서 사실상 출판이 금지되어 1955년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되었고 『프닌』도 연이어 퇴짜를 맞았다. 『프닌』은 1957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나보코프가 미국에 정착한 이래 세번째로 출간한 영어 소설이 되었다. 출간 2주 만에 3쇄를 찍는 성과를 냈지만, 1958년에 결국 미국에서 출간된 『롤리타』가 폭발적 성공을 거두면서 『프닌』은 거의 잊히다시피 했다.
『프닌』은 소품이라는 이유로 처음에는 호평을 받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보코프를 단순한 망명 작가가 아닌 독창적인 작가로 각인시키는 작품이 되었다. 나보코프는 이 작품을 “『롤리타』의 참을 수 없는 마력을 벗어나 잠시 환한 곳으로 탈출하는” 글이라고 언급했고, 자신의 모든 소설 캐릭터 가운데 프닌을 인간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두번째가 롤리타).
망명자 프닌, 캠퍼스의 작은 세계에 도착하다
이 작품의 주인공 티모페이 프닌은 러시아 상류층 출신으로 볼셰비키 혁명을 피해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 지식인이다. 미국 동부의 웬델 대학에서 비정규 교수로 근무하는 그는 미국 문명에 힘겹게 대처하는 구세계 지식인, 구세계에서 연마한 교양과 지식이 평가 절하되는 아웃사이더, 과거를 트라우마처럼 회고하는 망명자, 혼란스러운 여러 인간관계에 놓인 감상적인 사람, 잔인하고 무지한 교수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투하는 사람이다. 프닌은 우스꽝스러운 외모(대머리, 큰 몸통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가는 다리와 작은 발)와 불완전한 영어(를 포함한 3중 언어 구사자), 좌충우돌의 일상(모든 사물과 투쟁함) 등으로 모두의 웃음거리가 된다.
이 작품은 주인공 프닌(러시아 망명 지식인)과 화자(나보코프와 직업과 생일이 같은 나보코프의 소설적 분신), 작가 나보코프의 세 차원으로 서술된다. 이 셋은 실제 나보코프의 이력과 경험을 부분적으로 반영한다. 가령 프닌의 어린 시절 연인이 나치 수용소에서 죽은 점은 시인이자 동성애자이며 반히틀러주의자였던 나보코프의 동생 세르게이가 비슷한 죽음을 맞은 사실과 겹친다. 작품의 화자가 곤충학자이자 러시아 문학가인 점도 실제 나보코프와 유사하다. 프닌 - 화자 - 작가는 영어 구사의 수준이나 미국 적응 정도, 학내 평가 면에서 차이가 있다. 작품 곳곳에서 이 세 가지 서술 차원이 중첩되고 균열되고 분리되면서 독자는 작품이 주는 리듬과 혼란, 오해를 오가다가 마침내 감동과 이해를 얻게 된다. 이 소설에서 프닌은 버려진 개와 함께 불확실한 목적지, “무슨 기적이라도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곳”으로 향한다. 그러나 화자와 다른 등장인물들이 생각하는 종류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프닌의 망명과 상실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웃음과 조롱의 끝에서 맞닥뜨리는 슬픔과 윤리의 문제
“나보코프는 거장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웃음을 유발하고 그 웃음은 눈물에 이른다.” ―『가디언』
나보코프 연구자 브라이언 보이드는 『프닌』을 “나보코프의 모든 소설 가운데 가장 코믹하고 가장 애달프고 가장 단순한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이 평가는 『프닌』이 나보코프의 가장 단순한 작품이라는 뜻일 뿐 이 소설 자체는 단순하지 않다. 나보코프는 복잡한 이야기를 정교한 기법으로 들려주는 작가였고 『프닌』에도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나보코프는 시점 전환을 중요한 소설 기법으로 즐겨 썼고, 『프닌』은 작품 전체가 이 기법을 실험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그 잠재력을 다시금 놀랍게 보여준다.
작품의 화자는 주인공의 시각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동시에 화자의 시각도 믿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독자는 화자가 이끄는 대로 주인공 프닌이 웃음거리가 되는 데 쾌감을 느끼다가 화자의 정체가 드러날수록(처음에는 화자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다가 나중에야 드러난다) 초반에 화자와 함께 프닌을 비웃었던 순간들이 떠오르면서 윤리적 궁지에 몰리게 된다. 작품 후반에야 독자는 나보코프가 작품 전체에 심어둔 함정과 실마리, 중층적 서술 차원을 깨닫게 된다. 우리도 소설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과 마찬가지로 프닌을 조롱하고 오해하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데 공모해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