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정혜윤, 이다혜, 요조 강력 추천!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정의하고, 호명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실제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편찬 역사를 바탕으로, ‘영어의 규범’이라고 할 만한 이 사전을 만든 남성 편집자들의 역사에서 시선을 돌려, 사전의 권위에서 누락된 여성들의 언어와 사전을 만드는 데 기여한 다양한 여성들을 조명한다. 에즈미라는 책상 밑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그의 성장과 함께 더 멀리, 더 넓게 시야를 확장하며 사전의 역사뿐 아니라, 말과 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로 나아간다. 소설은 이 세계를 이루고 설명하고 있지만 공식적인 권위에 포함되지 못한 단어들, 글로 쓰이지 않았지만 분명 존재하고, 어떤 세계를 설명해주는 단어들의 세계를 섬세한 감정들, 아름다운 문장들, 글과 말에 대한 애정으로 빚어낸다. 이 책은 흥미로운 사전의 역사이자, 한 여자아이의 감동적인 성장담, 서프러제트 운동을 비롯한 여성 인권의 역사로서, 세기의 전환점을 배경으로 주로 남성 엘리트들로 이루어진 공식적인 세계와 그 이면의 다채로운 세계를 오가며 아름답게 풀어낸다. 전 세계 10여 개국에 출간 계약된 화제작.
목차
프롤로그 1886년 2월
1부 1887~1896년 Batten널빤지~Distrustful불신을 품은
2부 1897~1901년 Distrustfully불신을 품고~Kyx텅 빈 줄기
3부 1902~1907년 Lap무릎~Nywe새로운
4부 1907~1913년 Polygenous다원성의~Sorrow슬픔
5부 1914~1915년 Speech연설~Sullen시무룩한
6부 1928년 Wise현명한~Wyzen식도
에필로그 애들레이드, 1989년
『옥스퍼드 영어 사전』 연표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역사적 사건 연표
작가의 말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저자
핍 윌리엄스 (지은이), 서제인 (옮긴이)
출판사리뷰
사전에서 빠진 한 단어, 그리고 그 단어를 ‘훔친’ 여자아이
글과 말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으로 길어 올린 행간의 삶
“아주 조그만 보물 하나가 나를 찾아냈다. 그건 한 단어였다.”
“그것은 내게 왔기 때문에 특별했다. 거의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아주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니었다. 작고 연약했고, 중요한 뜻은 담겨 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벽난로 불길에 던져지지 않도록 지켜야 했다.”
아직 학교를 갈 수 없는 나이, 엄마가 없는 에즈미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집자인 아빠와 함께 사전이 만들어지는 편집실에서 매일매일을 보낸다. 에즈미의 자리는 편집 작업 테이블 밑. 어느 날 에즈미는 테이블 아래로 굴러 떨어진 ‘Bondmaid(여자 노예)’라고 적힌 단어 쪽지 하나를 우연히 줍는 것으로 시작해, 사람들이 ‘잃어버린’ 단어들을 하나하나 모으게 된다. 에즈미는 그렇게 차츰 더 많은 ‘거절당한/거절당할 법한’ 여성들의 단어들을 하나둘 모아 자신만의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을 낡은 트렁크 안에 꾸린다. 사전의 엄숙한 권위에서 밀려난 말들, 사전을 만드는 남자들이 인정하지 않는 단어들이 그 속에 쌓여가고, 더는 테이블 밑에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커버린 에즈미는 그 단어들이 주로 여성들의 언어라는 사실을 차츰 깨닫는다. 에즈미를 둘러싼 사전 편집실의 분위기, 가슴 아픈 성장의 고통, 다양한 언어를 지닌 다양한 여성들 속에서 에즈미는 단어들과 함께 성장하고 살아간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 초판 발간은 완간까지 70여 년이 걸린 초유의 프로젝트였다. 소설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전으로 꼽히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 편찬되는 흥미로운 역사적 현장을 치밀한 자료 분석과 취재를 통해 꼼꼼히 재현해낸다. 에즈미라는 허구의 인물을 중심에 두지만, 소설 속 등장인물 대부분은 실존 인물들이며, 사전을 만드는 과정뿐 아니라, ‘Bondmaid’라는 단어가 누락된 사건 역시 사전 역사의 일부다. 사전 편찬 연대를 줄기 삼아, 일화들, 서신이나 단어 쪽지 같은 자료들을 면밀히 취재해 더하고, 공식적인 기록이 남긴 여백을 날카로운 질문들과 풍성하고 아름다운 상상력으로 채워나간다. 저자인 핍 윌리엄스는 엘리트 남성으로 대변되는 공식적인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그 속에서 살아갔을 사람들을 생생히 그려낸다. 작가는 에즈미 못지않은 단어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역사를 파고들어 행간의 삶을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길어 올린다.
잃어버린 단어, 잃어버린 이야기를 되찾는 여정
누락되고 삭제된 세계를 복원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이 모든 여자들과 그들의 말들. 그들의 이름을 적어 넣던 기쁨. 그들이 잊힌 다음에도 그들의 일부가 오랫동안 남아 있으리라는 희망.”
단어에 관한 한 영국 최고인 사람들이 모인 사전 편집실, ‘스크립토리엄’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지만 실은 뒤뜰 창고에 불과한 그곳은 어린 에즈미에게는 지니의 램프 같은 “마법의 장소”다. “존재한 적 있는 모든 것, 그리고 존재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고 에즈미의 아빠는 말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에즈미는 ‘잃어버린 단어들’을 발견하고, 그 단어들은 사전이 수록하지 못한/않은 세계가 있음을 알려준다. 남루한 시장 매대 위로 오가는 거친 입담 속에, 응접실에서 벌어지는 날카로운 토론 속에, 세 끼를 준비하는 부엌의 평범한 대화 속에, 분명 존재하는 단어들과, 그 단어들을 말하고 경험하고 살아낸 사람들. 그들의 단어는 무시당하거나 잊히고, 어떤 목소리는 침묵으로 남는다. 에즈미는 직접 종이와 연필을 쥐고 편집실 밖 세계로 나가, 잃어버린 단어, 잃어버린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사전 편집 테이블 밑에서 나온 에즈미는 편집실 밖으로 걸음을 옮겨 세기의 전환점에서 일고 있는 변화들을 마주친다. 여성 참정권 운동으로 들끓고 있던 20세기 초, 서프러제트를 비롯해서 다양한 여성들이 참정권으로 대표되는 여성의 권리를 외치며 적극적으로 투쟁을 벌인다. 앞자리에 설 수 없었던 에즈미는 용기도 확신도 없는 자신을 탓하지만, 이내 그 목소리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투쟁의 주변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과 언어를 수집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임을 받아들인다. 뒤이어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은 사전 편집실을 비롯해 모든 곳을 전쟁의 참화로 물들이고, 사전을 만드는 많은 사람들이 이 거대한 비극 앞에서 언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회의감에 젖는다. 이런 거대한 역사의 부침 속에서 에즈미는 휩쓸리고 흔들리지만, 말과 글에 대한 꿋꿋한 애정과 성실함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싸움을 이어간다.
에즈미는 단어들 속에서, 단어를 천착하는 사람들 속에서 평생을 보내며 그 스스로 단어에 “매여 사는” 사람이 되어간다. 편집 테이블 밑에서 자라 결국 그 테이블 앞에서 일하게 된 에즈미는 사전 편집에 헌신하는 한편으로, 자신의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또한 소중히 일구어나간다. 인생에서 가장 슬프고 고단한 때조차 주머니에 단어를 받아 적을 쪽지와 연필을 챙겨 다니며, 누구도 발견해주지 않은 단어들을 발견하고 정의하고 기록하려 애쓴다.
때로 에즈미는 여성을 멸시하고 차별하는 단어 앞에서, 인간성의 붕괴를 드러내는 단어 앞에서, 어떤 단어들을 기록하고 남길 것인가 고민한다. 그러나 “남자들의 경험 한가운데서, 여성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질 필요가” 있기에, 공식 기록에서 빠진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어야 하기에, 에즈미는 지워버리고 싶은, 언젠가는 지워져야만 하는 단어들마저 또박또박 써내려간다. 정중하고 말끔하게 편집된 세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그것들이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고, 사전에 없다고 해서 그 현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잃어버린 단어들은, 침묵당한 목소리들은 말한다.
우리는 어떤 단어로,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자신의 정의를 찾고 싶어한 한 여성의 뭉클한 성장담
“만약 내가 단어라면 나는 어떤 종류의 쪽지에 적히게 될까, 나는 때때로 궁금했다. 분명히 길이가 너무 긴 쪽지일 것이다. 아마도 이상한 색깔일 테고. 규격에 잘 맞지 않는 종잇조각일 거야. 어쩌면 나는 절대로 분류함에서 내 자리를 찾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웠다.”
에즈미는 테이블 밑 어린아이에서 자신의 일과 말을 가진 어른으로 자라며 기쁨과 슬픔을 겪어낸다. 성장에는 기쁨만이 기다리지 않는다. 에즈미는 따듯한 사람들과 다정함에 둘러싸여 성장하지만 위압적인 사람들을 만나거나 사랑하는 존재들을 상실하는 쓰라림 역시 겪는다. 그런 순간에 언어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사전은 “오직 거기 가까운 말들을 제공할 뿐”이다. 언어로는 닿을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는 절망 앞에서, 서프러제트들의 ‘말보다 행동’이라는 구호 앞에서, 말로는 이루 다 할 수 없는 전쟁의 참상 앞에서 에즈미는 언어의 무력함을 절감한다. 하지만 어릴 때 자신을 발견한 첫 단어를 두 손으로 조심스레 감싸 쥐고 간직했듯 에즈미는 단어들에 대한 애정을 거두지 않는다. 여전히 몽당연필을 쥔 채로 에즈미는 자신이 발견한 단어들을 적어나가며 다양한 목소리를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하여 에즈미의 호기심과 열정은 말이 아니라 사람에 닿는다. 에즈미가 적어나가는 것은 결국 사전이 아니라 무시당하거나 잊힌 목소리들의 삶이다. 거침없는 틸다의 말들이 하는 저항과 싸움을 이해하고 자매애를 나누게 될 때, 메이블의 상스러운 말들과 그 말이 나타내는 그의 인생을 보듬게 될 때, 어릴 때부터 자신을 돌봐준 하녀 리지의 말을 받아 적으며 온전한 한 인간으로 마주하게 될 때, 에즈미의 세계는 거듭 넓어지고 깊어진다. 그리고 단어들은 “종이에 적힌 글자 이상의 무언가”가 되고, 서로를 잇고 이해하는 수단이, 세계를 다르게 정의하고 말하고 호명하는 수단이 된다. 에즈미는 다양한 여성들과 함께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을 채워나가며, 엄연히 존재하는 삶을 드러내고 스스로의 언어로 말하는 법을 익혀나간다. 그사이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은 더 많은, 더 다양한 삶을 불러내며 두터워지고, 완성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오래 걸리는 싸움”을 계속하도록 남는다. 핍 윌리엄스가 말했듯 사전도 언어도 언제나 “현재진행형의 작업”이고, 단어들을 끊임없이 새롭게 발견하고 다시 정의함으로써 우리는 더 많은, 더 다양한 언어로 말하게 되리라고 소설은 말한다.
작가의 말
“단어들이 남성과 여성에게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그 단어들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일이 가능할까? 우리가 언어를 정의하는 방식이 우리를 정의할 수도 있다. 이 소설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나의 노력이다.”
옮긴이의 말
“이 이야기는 역사소설이고, 성장소설이고, 한 여성의 일대기이며, 언어에 관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질문들을 모아놓은 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 모두를 합쳐놓은 것 이상이다. 주인공 에즈미는 몽당연필과 빈 단어 쪽지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이 모든 언어를 수집하고, 기록하고, 마침내 그것을 세상에 당당히 내보낸다. 이는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 믿었던 빅토리아 시대 지식인 남성들의 편향된 인식과 허위에 맞서는, ‘정상’이 아닌 것으로 규정되었던 존재들의 저항이자 해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