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잊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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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잊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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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1166831843
출판사
앤드
이제는 잊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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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라지고 내가 쓴 문장만
이 세상에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나태주
첫눈 같은 유년 시절, 아름다운 기억의 문이 열린다
나태주의 『이제는 잊어도 좋겠다』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과거 세대의 생생한 삶과 풍경을 재현해낸 자전적 기록이다. 문화의 변화 속에서 저절로 소실되거나 사람들이 망각하기 직전의 기억들을 끈질기게 붙잡고 있다가 다시 그 불씨를 피워내 형상화하고 복원해낸 인내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광복이 찾아오던 해인 1945년에 태어난 저자는 여섯 살 때 6·25 한국전쟁을 겪었지만 서른여덟 살에 혼자 된 외할머니의 품 안에서 포성의 기운을 감지조차 하지 못하고 평화롭게 성장했다. 외할머니는 그에게 유년의 노스탤지어와 같은 이름이다.

적막하지만 찬란한!
외할머니는 당신의 친정집이 있는 궉뜸마을 감꽃처럼 부끄럼쟁이 새하얀 꽃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감나무 잎이 나무 전체를 초록빛으로 덮을 때 이파리 뒤에 숨어 작은 꽃송이로 흰 꽃을 피웠다가 바람이 세게 부는 날 새벽에 사람들 모두가 잠들어 있을 때 눈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꽃! 그렇게 나태주의 유년은 적막하지만 찬란하다.

인생은 사막을 건너는 여행
외할머니와 함께 접방살이를 하던 기억으로부터 6·25 전쟁 이후 격변에 휩쓸리던 빈농의 아들이자 자치대장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고해성사, 외할머니의 등에 업혀 눈 덮인 들판과 수로의 긴 둑길을 걷는 그리고 국군에 입대해 논산 훈련소에 들어간 아버지를 면회 가기 위해 길 떠나는 피란민 같은 초라한 가족의 행렬은 인생을 사막의 여행에 비유한 나태주 시의 근원을 짐작케 한다.

문학과 시간의 향기 속으로
나태주의 유년을 산책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 길목에서 우연히 황순원과 백석, 박완서가 공유했을 법한 시간의 향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솜틀집, 《자유의 벗》, 《새벗》 등 사라져가는, 혹은 기억 저편으로 떠나보낸 추억의 이름을 다시 소환해보는 따뜻한 시간을 갖게 된다.

먼산나무를 바라보는 마음
이 책을 읽다 보면 ‘먼산나무’와 같은 아름다운 고지(高地)에 이른 노시인의 문학적 성취에 절로 감탄하게 될 것이다.
시인 나태주가 복원해낸 아름다운 유년의 세계를 통해 우리는 외할머니를 기다리는 초등학생 4학년의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나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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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 망각에 바친다

1장 바람이 잠든 새벽/ 흰 감꽃이 날리면
돌연변이
첫 번째 기억 : 외할아버지 마지막 해바라기
두 번째 기억 : 외할아버지 재맞잇날
접방살이
외할머니
감꽃
솜틀집
풋감 떨어질 때
소왕굴 들
간이학교
목화 열매

2장 그리운 외갓집
떡나무와 꿀강아지
자치대장
나일론 양말
검정 지우개
눈길
문둥이 고개
아버지 면회
그림 부채
경기
풍조 형
구애순 선생님

3장 별과 해의 가족들
풍뎅이
가장물할머니네 집
갈칫국
정수좌
절꿀 이모네
동옥이 이모
위문편지
사상가
꼬작집
고목나무
물잠자리

4장 서커스 그 찬란한 기적처럼
벽장
산수유꽃 새로 필 때
흰 고무신 한 켤레
넉배재
서울서 전학 온 아이
연꽃
서커스 구경
자유의 벗
나무 바다
꿩병아리
병아리

5장 먼산나무가 오는 저녁
크레용
서향집
장항 할머니

뿔피리
태극기
만화책
가르마 자국
외할머니의 입맛
먼산나무
여우 우는 밤
유훈이

에필로그 : 나는 사라지고 문장만 남기를

책 속으로

나는 지극히 집요하고 에고가 강한 인간이다. 그래서 일생 시를 쓰는 사람으로 살아와야만 했다. 무언가 자신이 남과는 다르면서 특별해져야 한다고 턱없이 믿었던 허영덩어리였지만 이제는 평범하고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무명으로 돌아가야 한다. 덕지덕지 묻어 있는 기억의 얼룩들을 닦아 말끔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길이 바로 이 책을 끝까지 제대로 쓰는 일이다.
_프롤로그 중에서

열여섯 철없던 나이에 시인이 되겠다고 소원을 세웠노라 말하곤 하는 나다. 그로부터 장장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스스로 돌아보았을 때 단 하루도 시를 생각하지 않고 넘어간 날이 없고, 한 번도 시를 쓴 것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
_p.018

외할머니의 등은 넓고 아늑하고 한없이 푸근했다. 외할머니의 등에 업히기만 하면 세상 모든 근심이 사라졌고 걱정이 멀어졌다. 외할머니의 등이 나의 세상이었고 놀이터였고 잠의 터전이었다. 그렇다. 나는 외할머니의 등에 업혀서 자주 잠들곤 했다.
_p.041

분명 남자아이로 태어났지만 어쩌면 내 마음속에는 여자아이가 하나 더불어 살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여자아이가 나를 평생 여기저기 끌고 다니면서 예쁜 것, 사랑스런 것을 보게 하지 았을까. 미세하고 멀지만 곱고 아름다운 소리에 귀 기울게 했던 게 아닐까. 또 시인으로 평생 살게 하지는 않았을까, 뒤늦게 혼자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_p.145

올해도 여름이 오면 나는 공주의 제민천 가에서 그 물잠자리를 다시 만날 것이다. 그러면 다시금 나는 눈부신 햇빛 속에 검은빛 날개로 우아하게 춤을 추듯 날아가는 물잠자리를 바라보는 열 살짜리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곤 한다.
_p.217

그 아이가 책을 읽을 때는 앞으로 팔을 뻗고 반듯하게 두 손으로 책을 잡고 읽었다. 목소리가 더없이 낭랑했다. 그때까지 그렇게 예쁜 목소리로 책을 읽는 아이를 본 적이 없었다. 책을 잡기 위해 들어 올린 두 팔이 새하얗고 팔 뒤에 옴폭하게 패인 팔꿈치까지 예쁘게 보였다.
_p.243

이번에야말로 여한 없이 잊어버리고 싶다. 진정한 망각의 세계로 되돌려 보내고 싶다. 그것이 끝내 글을 쓰게 된 까닭이고 책이 된 이유이다. 이제부터 나는 사라지고 문장만이 세상에 남았으면 좋겠다. 부디 그러기를 바란다.
_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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