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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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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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사랑하는 것들만이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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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도시, 새, 호랑이, 돌, 원숭이, 시 …
이 땅의 모든 존재를 향해 미술이 뻗어나가는 상상력
《태도가 작품이 될 때》로 많은 사랑을 받은 박보나 작가가 두 번째 미술 에세이《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을 출간했다. 현대미술작품을 작가의 ‘태도’로 설명하며 큰 반향을 일으킨 저자는 이번 책에서 오랫동안 쓰고 싶었던 주제인 ‘생명’을 통해 새로운 미술의 세계를 보여준다. 저자의 책을 차치하고라도 현대미술작품이 어렵고 복잡하다는 여론은 여전히 우세해 보인다. 작품을 자유롭게 상상해볼 수 있는 시간은 누군가에겐 ‘궁리’의 재미를 느끼게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 어렵고, 잔인한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그 과정은 건너뛰고 곧장 독자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려는 책은 많다. 시간을 들여 작품을 바라보는 재미를 느끼게 하고, 그 시간을 더욱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책은, 외면당하곤 한다. 책의 배려가 곧 독자들에겐 인내심과의 사투가 되는 것이다. 박보나 작가는 이 양극 사이에서 독자들에게 해석에 대한 운신의 폭을 다정하게 내어주는 한편 본인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작가의 태도, 창조성, 상상력에 빗대어 작품을 쉽게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수직적 관계보다는 공존과 연대의 관계에서 미술을 ‘옆으로’ 보도록 돕는다(《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역시 ‘미술과 생명이 옆으로 나누는 대화’가 큰 골자다). 그렇게 납작해진 미술에 대한 해석은 저자의 목소리를 통해 부풀고 떠올라 새로운 입자가 되어 독자를 향한다. 어렵고 잔인하지 않게, 따스하게 사유와 감각을 옮겨갈 수 있도록 작은 숨구멍이 되어 준다.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은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 존재들에게 ‘없는 이름’을 불러주려는 시도다. 더해 우리가 함부로 이름 짓고 부르는, 모든 것을 멋대로 규정하려는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마련해준다. 코로나19와 각종 환경위기로 ‘생’보다는 ‘죽음’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좀 더 기울어지는 요즘, 생명을 소중히 여기자고 말하는 건 투박하다 못해 이상주의자들의 낡은 생각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라와 세대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친밀해지려는 시도는 더욱 촘촘해지고 있다. 오히려 윤리적 소비, 동물권을 향한 긍정적 변화, 차별적 시선에 대한 비판적 무브먼트 등 다채로운 움직임이 일어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책에서는 조은지 작가의 동물의 삶과 권리를 지지하는 행위 퍼포먼스(〈돼지는 잘 살기 위해 태어났을 뿐〉)를, 지미 더럼 작가의 순종과 혼종에 대한 구별 짓기를 어지럽히고 부수고자 설치한 미술작품(〈돌로 구분을 부수고〉)을 소개한다. 저자 역시 어둡고 그늘진 지금의 세계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줄곧 생각했다고 한다. 글을 쓸 기회가 생기자마자 ‘지구 위의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결심하곤 이 책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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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조은지, 정서영, 지미 더럼, 피에르 위그, 크리스틴 선 킴 등 …
부수고, 자르고, 던지고, 칠하며 ‘없는 이름’을 부르기 위한 작가들의 노력

이상을 한낱 판타지가 아닌 실재로 그려가기 위한 움직임은 미술계에서는 꾸준했다. 부수고, 자르고, 칠하고,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미술작가들 또한 필요하다면 빈병과 흙을 주물럭거리고 던지며, 자신들의 이야기로 또 다른 존재와의 연결고리를 찾아 나선다. 저자는 미술이 가진 편협한 꼬리표(어렵고, 추상적인, 저항적인) 대신 미술의 세계에서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자 한다. 더불어 독자들이 ‘미술 같은 것’을 찾기보다 미술 그 너머에서 작품을 바라보고 느끼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 먼지 하나 없는 미술관, 그곳의 흰 벽에 걸린 작품이 미술이라고 누구도 규정한 적은 없다. 그것이 미술이 아니라고 한 적도 없다. 저자는 미술 같은 것이 있다고 믿는 허구의 세계에서, 작가들의 행위의 목적이 과연 미술 같은 것을 미술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기를 바란다. 그 의문을 사이에 두고 ‘이 땅의 모든 존재를 향해 미술이 뻗어나가는 상상력’에 집중한다면, 보다 선명한 실제 세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는 총 14명의 작가가 등장한다.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 조은지, 정서영 그리고 저자(박보나)를 비롯해 혼프, 주마나 에밀 아부드, 지미 더럼, 피에르 위그, 크리스틴 선 킴 등 다소 생소한 국외 작가들의 작품도 한데 모았다. 14인의 작품 속에서 하나의 키워드를 뽑아내고 이를 다음 장의 주제와 연결시키며 생명의 연결성과 존재의 자주성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나무에서 새로, 새에서 호랑이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체계 내에서 독자들은 작가들의 상상력을 비롯해 저자가 말하는 ‘옆으로 나누는 대화’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인도네시아 창작 집단인 혼프가 예술의 가치를 공존과 도움의 영역으로 옮기며 작업하는 모습이 꼭 나무와 풀 같다. 그 이야기를 이어받아 에콰도르 출신 미술작가 오스카 산틸란이 나무와 풀이 자라는 공간이 파괴되며 자리를 잃은 새들의 소리를 찾아 나서는 식이다. 그다음엔? 새들의 소리를 찾아 떠난 미국에서 우리는 순종과 혼종에 대한 구분을 부수고자 하는 홍 류, 지미 더럼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피에르 위그는 원숭이(동물)의 시선에서 인간을 살피는 것에 대한 서늘한 감각을, 저자(박보나)는 이미지에 뒤에 감춰진 탐욕스러운 거짓말을 영상과 사운드를 이용한 퍼포먼스로 고발한다. 저자는 들리고 보인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의 각도를 조금만 비틀어도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거기에 또 다른 현실이 있음을.

마지막 장〈좀 더 천천히, 좀 더 가깝게〉에서 미술가 케이티 패티슨은 노르웨이 숲에 천 그루의 나무를 심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그 나무가 다 자라면 종이로 가공해 책을 만든다고 한다. 그때는 작가도 우리도 이미 세상을 떠난 뒤다. 패티슨은 미래의 세대에게 무엇을 남기고 싶은 걸까? 한편 패티슨은〈모든 죽은 별〉이라는 작품을 통해 죽은 별들이 남기고 간 원소들이 또 다른 생명의 시초가 되어 우리 몸속에 새겨져 있음을 알린다. 우리의 피가 수억 년 전에 죽은 별의 원소에서 비롯되었다면 믿어지는가. 책은 인도네시아 창작 집단 혼프의 나무 이야기로 시작해 스코틀랜드의 작가 케이티 패터슨의 나무와 별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으며, 이미 수억 년 전 별의 탄생과 죽음에서부터 인연이 이어져 왔음을, 저자-그리고 케이티 패터슨-은 말하고 싶었다. “우리는 이 초록의 행성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사이였다.”(171쪽)

미술이 잡은 모든 손(생명)…
그들과 위아래가 아닌 ‘옆으로 나누는 대화’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은 ‘미술이 잡은 모든 손(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니 이 땅 위의 존재에 경계를 짓고 이름을 맘대로 부르려는 모든 행동을 부수고 깨트리는 일에 미술가들은 겁을 내지 않는다. 순혈(純血)에 대한 허황된 믿음 앞에 돌을 집어 던지고,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무지 앞에서 무엇이 자연이고 무엇이 미술인지 모르겠는 혼란스러운 작품 세계를 선사한다. 경계를 짓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를 알려준다.

저자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몇 단어를 지우자는 편집자의 말에 꿈쩍하지 않았다. 지우지 않은 그 단어들이 곳곳에 숨어서 작은 존재들의 권리를 더 크게 알리고 있다. 그들의 맹렬한 기운을 살린 건 그 단어들이다. 저자를 포함해 수많은 미술가의 퍼포먼스는 움직이고 만들고 행동하는 진짜 ‘리얼리티’다. 꿈꾸기보다 행동하는 이들의 이야기만이, ‘현실’일 것이다. 미술가들과 그들이 이루어낸 퍼포먼스는 진짜로 움직여본 적 없는 자의 방만한 생각이 얼마나 무지한지 일러준다. 이들과 나누는 ‘옆으로의 대화’가 다시 한 번 현대미술작품과 독자들의 거리를 좁혀줄 것이다.

“이 세상에 남아돌거나 소외되어도 괜찮은 존재는 하나도 없다”는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의 다정한 말을 곱씹으며 이 책을 썼다. 우리가 함부로 밀어낸 다양한 존재들을 하나하나 부르는 미술작가들의 작업을 넓게 읽고 사회와 유연하게 연결시킴으로써, 더 늦기 전에 이 땅 위의 생존 문제를 같이 얘기해보고자 했다. 이름을 빼앗긴 자들과 이름이 없는 존재들까지 부르는 작가들의 손짓, 그것을 읽는 나의 목소리가 당신과 내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함께 숨 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_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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